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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돌핀스7

인천 최고의 포수 ‘백돼지’ 김동기 1994년 대망의 한국시리즈 1차전… 태평양 선발 김홍집과 LG 선발 이상훈의 숨 막히는 투수전으로 잠실벌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7회까지 양 팀은 1-1로 팽팽히 맞섰다. 시즌 상대전적 5승 13패의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던 그 태평양이 아니었다.  그리고 드디어 태평양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8회초 1사 1,3루…  LG 마운드는 차동철이 지키고 있었고, 타석에는 4번 타자 김경기가 들어섰다. 플레이오프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한 김경기. 그는 팀 내 최고의 타자답게 첫 포스트시즌에서도 돌고래 군단을 이끌고 있었다. 이미 앞서 이상훈에게도 안타를 뽑아냈다. 그래서였을까? LG 배터리는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고의4구로 만루를 채웠다. 그리고 LG 벤치가 움직였다.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 2024. 11. 22.
왕조를 지킨 ‘영원한 캡틴’ 이숭용 프로 17시즌 동안 단 한 번도 타이틀을 따낸 적이 없었었다. 그리고 그를 강타자로 기억하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는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지 않았지만, 어려울 때 의리를 지킨 의리의 사나이였다. 팀이 잘 나갈 때도 그는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었고, 팀이 어려울 때도 아픔을 겪을 때도 끝까지 팀을 지킨 사나이. 그가 바로 현대 유니콘스의 영원한 캡틴 이숭용이다. 인천팀 최초의 왼손 거포를 기대하며… 태평양은 1994년 드래프트 2차 1번으로 이숭용을 선택했다. 당시 태평양은 이숭용에게 3할에 20홈런을 기대할 정도로 기대치가 매우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천 연고 역사에서 내세울 만한 좌타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냥 괜찮은 타자가 아니라 거포형 왼손타자의 출현은 돌핀스 군단을 흥.. 2024. 7. 27.
유니콘스 '불꽃 남자' 정명원 (2) 1996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 1995년을 끝으로 태평양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1996년 현대 야구단이 출범했다. 정명원은 변함없이 유니콘스의 마무리로 활약했다. 정명원은 신생 구단 돌풍과 함께 부활했다. 1996시즌 53경기에 등판 8승 5패 26세이브 97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1.58을 기록했다. 또한 구원 부문 2위에 오르며 KBO리그 통산 5번째 100세이브 투수가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94시즌에 보여줬던 강렬한 모습은 사라졌다. 쌍방울과 플레이오프에서 정명원은 0-0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베테랑 박철우에게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면서 그의 현역 생활을 연장(?) 시켜주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는 마무리 자리를 ‘불펜 투수’ 조웅천에게 내줘야 했다. 벤치.. 2024. 7. 18.
유니콘스 '불꽃 남자' 정명원 (1) 1996년 6월 2일… 재계 라이벌 현대와 삼성이 도원에서 주말 3연전의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승부는 이미 현대 쪽으로 너무 많이 기울었다.  그런데 경기 후반 세이브 상황도 아닌데 정명원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이것이 엄청난 사건(?)을 만들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상기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라온 정명원은 첫 타자 양준혁을 맞춰버렸다. 이때 양준혁도 뭔가를 직감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어 등장한 이승엽에게 몸에 바짝 붙는 볼을 던졌다. 가까스로 피한 이승엽. 하지만 정명원은 작심한 것처럼 이승엽의 등판을 맞췄고, 이승엽은 “악”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동시에 양 팀 덕아웃에 있는 선수들은 물론 코치까지도 그라운드에 난입하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했다. .. 2024. 7. 17.
인천의 4번타자 '고릴라' 김경기 (2) 현대 유니콘스, 도원, 그리고 우승 1995년을 끝으로 태평양 돌핀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리고 현대 유니콘스의 역사가 1996년 시작됐다. 그리고 김경기는 새롭게 시작하는 팀의 주장이 됐다.  현대는 박재홍이라는 슈퍼 루키를 앞세워 선풍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박재홍에게 가려지기는 했지만, 김경기의 방망이도 불이 붙었다. 시즌 출발은 좋지 않았지만 5월과 6월 맹타를 휘두르며 그는 프로 데뷔 첫 3할에 도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7월 경기 도중 손목 부상을 당하면서 힘겨운 하분기를 보내게 됐다. 사실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었다. 그런데 팀이 선두를 달리다가 계속 추락하는 상황에서 그는 주장으로 고통을 참는 방법을 선택했다.  부상으로 7월 이후 3할의.. 2024. 7. 16.
인천의 4번타자 '고릴라' 김경기 (1) 1997시즌 후반기가 펼쳐지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잠실에서는 OB 베어스와 현대 유니콘스의 평일 야간 경기가 치러졌다. 그리고 라디오 중계를 하던 유수호 아나운서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라인업을 소개하고 있었다.  “6번 타자! 써어~드! 베이스맨! 김경기! 7번…” 유수호 캐스터의 특유의 목소리와 발음이 이어지는 순간 귀를 의심하게 됐다. 이는 유수호 캐스터의 실수였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김경기의 포지션은 1루였기 때문이다. 경기 내내 그의 포지션을 의심했는데…밤늦게 진행된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그가 1루가 아닌 3루로 경기에 나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해 김경기는 타격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간 후, 포지션을 변경한 것이다.  프로 8년 차…팀의 주장… 그런 그가 시즌 중에 포지션을 변.. 2024. 7. 15.
현대 유니콘스의 '영원한 에이스' 정민태 (1) “현대가 없어진 날, 내 야구 인생도 끝났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한 마디였다. 에이스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퇴식도, 영구결번식을 할 수 있는 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때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어떤 선수들은 한두 시즌 반짝해서 실력 이상으로 팬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리그를 지배했던 에이스였고, 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우완 투수였음에도 저평가받았다. 그리고 조롱받을 때도 팬들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이것이 팬 없는 구단의 설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항상 거침없는 피칭으로 승리를 안겨주는 그가 너무나 고마웠다. 정. 민. 태. 그는 현대 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누가 뭐라고 해도 현.. 2024.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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