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횡무진 전준호 Time
새천년 우승을 노리던 현대. 그러나 악재가 터졌다. 당시 언론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진실에 대해서 아는 이들도 의외로 많이 없을 수 있다. 전준호는 2000년 자신의 프로 커리어 중에 두 번째로(은퇴 시점을 제외) 적은 경기를 뛰었다. 표면적으로는 부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부상이 아니었다.
당시 KBO리그는 선수협으로 인해 구단과 선수는 물론 선수와 선수 간 갈등이 폭발했던 시절이다. 그 결과 선수협 문제를 놓고 김경기와 전준호가 이견을 보였고, 심지어 배우자들도 현대 공식 홈페이지에서 설전을 벌였던 것. 그리고 스프링캠프에서 김경기와 전준호가 마찰로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전준호는 시즌을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준호가 돌아왔을 때 현대 라인업은 사실상 약점이 없었다. 게다가 ‘전준호의 출루 = 득점’이라는 등식이 이루어졌다. 2000시즌 전준호는 단 87경기를 뛰면서 263타수 83안타 타율 0.316 도루 18개 출루율 0.436(커리어 하이)을 기록하며 ‘부동의 1번 타자’로 힘을 과시했다. 그리고 팀의 통산 두 번째 우승이자 새천년 첫 우승팀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전준호의 스타일이 변했다는 것. 전준호는 더 이상 많이 뛸 이유가 없었다. 그 정도로 현대의 공격력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의 공격력이 롯데보다(?) 좋아진 이유는 많이 뛰지 않아서일 수도…
『선수협 문제에 대해 당시 구단 편에 선 선수들과 선수협과 갈등도 상당했다. 지금도 그 일은 누군가에게 비난의 꼬리표가 된다. 하지만 당시 선수협도 무조건 옹호할 수 없었다.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은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했든 뭐든 야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훗날 물의를 일으켜 이미지가 너무 좋지 않지만 강병규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런데도 선수협은 그라운드에서 퇴출된 이들은 사실 그 어떤 것으로도 책임을 져주지 않았다.
분명 그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야구판은 달라졌다. 하지만 100% 옳은 일만 했던 것은 아니다. 자신들과 뜻을 함께 하지 않았다고 배신자 혹은 구단의 앞잡이로 몰아가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선동열은 일본 주니치 소속의 선수였다. 그런데 선수협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고 지금도 비난하는 인물은 이해할 수 없다. 참고로 당시 선수협과 관련해서 일본의 자료를 선동열이 모두 보내줬다고 한다. 그럼 주니치 소속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 아닌가?
당시에도 2군 선수들의 처우 개선이 우선이었을까? 결과적으로는 그때도 그랬고, 이후에도 선수협이 그 역할을 별로 해내지 못했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전준호는 2001시즌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125경기 출장 400타수 130안타 타율 0.325 홈런 4개 도루 27개 출루율 0.426 장타율 0.430을 기록하는 등 도루 숫자가 줄었으나 역대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그는 시즌 후 프로 데뷔 첫 FA를 선언했다.
과거 ‘돈대(?)’였다면 대박을 냈을 텐데…전준호의 계약은 순탄치 않았다. 전반적으로 당시 FA 먹튀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현대는 모기업이 휘청거리면서 가세가 기운 것도 이유였지만, 현대는 FA 계약 만큼은 절대 오버 페이 없이 합리적인 계약을 했던 팀이었다. 줄곧 4년 18억을 요구했던 전준호. 이러다가 결별 수순을 밟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전준호는 결국 3년 총액 12억(연봉 2억, 옵션 2억, 계약 보너스 4억)에 계약했다.
혹시나 먹튀? 아니면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닐까 우려(?)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2002시즌 126경기를 뛴 전준호는 420타수 126안타 타율 0.300 도루 26개 출루율 0.394 장타율 0.395를 기록하며 FA 첫해 먹튀가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이별 준비와 우승, 그리고…
2003년 여러 가지로 어수선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현대는 통산 세 번째 정규리그 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전준호 역시 한국시리즈에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팀의 통산 세 번째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전준호는 현대 유니폼을 입은 첫해를 제외하고 가장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2003시즌 전준호는 129경기에 출장 512타수 119안타 타율 0.269 도루 20개 출루율 0.365 장타율 0.353에 불과했던 것.
참고로 전준호는 1998년 이후 출루율이 해마다 3할 후반에서 4할 이상을 찍었다. 사실 전준호의 가치는 도루 능력이 아니었다. 언제든 출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장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현대도 새로운 1번 타자를 생각할 때가 온 것이었다. 전준호의 나이가 30대 중반을 향하고 있었고, 그의 심각한 ‘소녀 어깨’는 사실상 수비가 불가능했다. 이제 현대는 전준호의 대체 자원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2004년 전준호는 사실상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아니 ‘전설의 대도’로 마지막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2004시즌 전준호는 132경기를 뛰며 487타수 142안타와 타율 0.292 그리고 무려 53도루를 기록했다. 도루 부문 2위는 44개를 기록한 김주찬이었다. 박빙이라기보다 여유 있게 도루왕을 차지한 것. 특히 무려(?) 35살의 나이에 도루왕을 차지한 것이다. 출루율 0.377 장타율 0.366으로 직전 시즌과 달리 어느 정도 평균 수치를 회복했다.
그리고 전준호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냈다.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KBO리그 역사상 1호 한국시리즈 홈스틸을 기록한 것이다. 어쨌든 사력을 다해서 뛰었던 전준호는 현대의 통산 네 번째 그리고 마지막 우승의 주역이 됐다.
『당시 전준호가 미친 듯이 뛸 때마다 현대 팬들은 “안 뛰어도 된다.”라고 했다. 왜냐하면, 전준호의 체력을 위해서였다. 물론 그가 한 베이스, 한 베이스를 훔칠 때마다 팬들은 희열을 느끼기도…참고로 전준호는 95년 69개의 도루를 끝으로 2003년까지 단 한 차례도 40개 이상 도루를 했던 적이 없었다. 뭐 현대라는 팀이 그럴 필요도 없긴 했지만 말이다. 전준호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진짜 대도’의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것은 마지막 불꽃이었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해태밖에 하지 못했던 2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한 현대. 그러나 모기업의 지원이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주력 선수들이 대거 이탈했다. 그리고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팀은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전준호 역시 94경기만을 뛰며 278타수 74안타 도루 18개를 기록하며 0.266의 타율로 시즌을 마감했다. 아마도 2005시즌은 은퇴 시즌을 제외하면 프로 입단 후 최악의 시즌이었을 것이다.
이듬해 109경기 303타수 87안타 타율 0.287 도루 20개를 기록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일조했지만 그렇게 현대와 길었던 인연이 끝나가고 있었다. 한편 이해 8월 5일 KBO리그 1호 통산 500도루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7시즌 전준호는 38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21경기를 뛰었다. 그리고 3할에 가까운 0.297의 타율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2시즌 동안 100안타를 넘기지 못하던 그는 110안타를 기록한 것. 다만 도루는 11개로 프로 입단 후 주전으로 뛰면서 가장 적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을 끝으로 현대 유니콘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물론 전준호는 히어로즈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2008년 109안타와 0.310의 타율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게다가 KBO리그 두 번째로 2천 안타 달성과 2천5백 루타(10번째), 18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 통산 2천 경기 출장, 3루타 100개 등 많은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세월을 거스를 수 없었다. 시즌 초반 당한 부상으로 2009년에는 고작 21경기를 뛰며 타율 0.242와 단 2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완벽했던 1번 타자 전준호
“안타 치고 도루하는 전준호~안타 치고 도루하는 전준호~”
팀은 사라졌다. 그리고 전준호가 그라운드를 떠난 지 십수 년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응원가가 생각난다.
롯데 시절 이종범과 도루 대결할 때는 진짜 무서운 스피드를 자랑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그런 기억이 사실 없다. 하지만 그는 현대에서 KBO 역사상 가장 완벽했던 1번 타자였다고 말하고 싶다.
현대 시절 그의 도루 숫자는 많이 줄었다. 은근히 실패도 많았다. 하지만 전준호가 루상에 나가면 상대는 골치가 아팠다. 그보다 타석에서도 전준호는 만만한 타자가 아니었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절묘한 배트 컨트롤과 세이프티 번트 안타는 그냥 神의 영역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현대가 존재했다면…그는 화려한 은퇴식과 함께 팬들에게 박수받고 그라운드를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는 사라졌다. KBO리그 통산 최다 도루 기록을 보유한 전설적인 인물임에도 은퇴식도 없이 퇴장해야 했다. 참고로 히어로즈는 삼-청-태-현을 계승했다고 허위 광고를 하면서도 정작 현대 출신들을 홀대한 그런 추악한 팀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현대 유니콘스가 사라진 지도 십수 년이 지났다. 이제 현대 소속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팀이 존재했다면…
은퇴 이후 전준호는 코치로,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전히 야구판에 머물러 있다. 원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역 시절 그라운드를 누볐던 것처럼 그가 감독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야구 센스가 훌륭했던 선수였기에 감독이 된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야구를 보여줄 것 같다. 반드시 꼭 감독 전준호의 모습을…
어쨌든 팀은 사라졌지만, 전준호는 필자의 마음속에 또 한 명의 현대 유니콘스 영구 결번 선수다.
● 전준호
● 백넘버 : 1
● 1969년 2월 15일생
● 마산상남초-마산동중-마산고-영남대
● 좌투/좌타/외야수
● 1991년 2차 2라운드(롯데 지명)
● 소속팀 : 1991-1996 롯데 -> 1997-2007 현대 -> 2008-2009 우리
● 주요 경력
- 도루왕 3회(1993, 1995, 2004)
- 골든 글러브 3회(1993, 1995, 1998)
- 득점왕 1회(1995)
- 한국시리즈 우승 5회(1992, 1998, 2000, 2003, 2004)
- KBO 통산 도루 1위(549개)
- KBO 최초 2천 경기 출전(2008년 6월 7일 한화전)
- KBO 2호 2천 안타(2008년 9월 11일 롯데전)
- KBO 최초 2천 경기 출전 및 2천 안타 달성
- KBO 최초 3루타 100개 달성(2008년 10월 3일 두산전)
- KBO 통산 3루타 1위(10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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