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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왕조/왕조의 주역들

‘안타치고 도루하는’ 전설의 리드오프 전준호 -1편-

by 특급용병 2026.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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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날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구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날까지 현대는 ‘1번 타자 부재’로 고통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격수와 좌익수 사이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소유했고, 요즘처럼 극단적인 시프트가 존재한다면 기습번트 혹은 또 다른 방향으로 안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배트 컨트롤과 바깥쪽의 볼을 마치 점프하면서 커트 해내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는 말 밖에는…

 

게다가 투수와 1루수 - 2루수 사이로 흘러가는 기습번트는 현시대에 뛰는 선수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그의 전매특허였다. 여전히 수원 1루 관중석 맨 꼭대기에서 그의 번트 타구 방향과 궤적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다. 아마도 지금 이런 번트를 댈 수 있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현대가 존재했다면…그는 화려한 은퇴식과 함께 팬들에게 박수받고 그라운드를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는 사라졌다. KBO리그 통산 최다 도루 기록을 보유한 전설적인 인물임에도 은퇴식도 없이 퇴장해야 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현대 유니콘스가 사라진 지도 십수 년이 지났다. 이제 현대 소속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의 마음속에는 또 한 명의 현대 유니콘스 영구 결번 선수다.

 

전. 준. 호.

 

그는 KBO리그 역사에 손꼽히는 1번 타자이자 ‘현대의 맞춤형 1번 타자’였다.


전준호의 충격적인 현대 입성기!

 

1997년 프로야구 개막 4일 전…

 

놀라운 소식 아니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롯데 자이언츠 부동의 1번 타자이자 ‘대도’ 전준호가 현대 유니콘스의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이다. 1995시즌 중 태평양은 김홍집 or 안병원을 카드로 협상을 진행했다. 물론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당시만 해도 트레이드는 선수가 팀에 버림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구단들도 중심 선수가 낀 대형 트레이드는 보복성으로 진행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므로 전준호의 현대 이적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롯데 팬들에게는 부정적인 충격이었고, 현대 팬들에게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행복한 충격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현대가 김홍집, 안병원 등 그동안 꾸준히 거론됐던 투수들을 주지 않아도 됐다. 즉 사실상 현대는 아무도 주지 않고 전준호를 받아왔다. 현대는 전준호를 영입하는 대신에 명목상 현금 5억 3천과 문동환을 내줬다.

 

참고로 문동환은 롯데 선수였어야 했다. 다만 그가 실업팀 현대 피닉스에 입단했기 때문에 롯데가 문동환을 얻으려면 위약금을 내야 했다. 하지만 롯데는 그 돈을 주면서 문동환을 데리고 올 팀이 아니었다. 그 결과 위약금을 지불하기 싫어서 전준호를 사실 현금 5억 3천에 팔아넘긴 것이다.

 

『당시는 물론, 이후에도 현대에 대해 많은 비난이 있었다. 현대가 무조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언론에서는 현대를 악의 축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도 있다. 현대 피닉스에 입단한 선수들이 마치 프로에 가고 싶었지만, 현대 피닉스가 막아선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현대가 돈을 뿌려서 망쳐놨다면 기존 구단들 역시 치졸한 짓을 했다. 당시 1차 지명을 했다는 이유로 해당 선수들에 대해 대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대로 된 협상도 안 한 선수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동환이었다. 이는 문동환이 직접 밝혔던 부분이다. 여러 차례 만났음에도 계약금도 제시하지 않았던 쪽은 롯데였다.

 

그래 놓고 마치 선수가 배신한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했다. 그에 앞서 현대의 KBO 입성에 대해 절대적인 반대를 했다. 왜냐하면 대기업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NC가 제 9구단으로 들어올 때, 대기업이 아니라고 기존 몇몇 구단이 완강히 반대했다.

 

아무튼 롯데는 전준호를 버렸다. 이후 김대익을 시작으로 브래디 등 여러 인물로 돌려 막았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자 FA가 된 정수근과 6년 계약을 했다. 하지만 그 6년은 돈만 날렸고, 10년 넘게 1번 타자가 없어서 고통받았던 것. 반면 현대는 리그 최고의 1번 타자와 함께하면서 두 팀의 운명이 바뀌었다.』

 

어쨌든 롯데 부동의 1번 타자가 갑작스럽게 현대 유니폼을 입는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충격은 충격이고…1982년 삼미를 시작으로 인천 연고 팀에는 강력한(?) 1번 타자가 없었다. 그런데 당대 최고의 1번 타자. 그것도 인천 연고 팀에게는 ‘약점’과 같았던 좌타자 전준호의 인천 입성은 창단 두 번째 시즌 돌풍 시즌 2를 기대하게 했다.

 

물론 현대에서 전준호의 데뷔전은 무안타 경기로 끝났다. 그뿐 아니라 개막 2차전에서도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트레이드로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고 완전히 리듬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던 8회말 전준호는 싹쓸이 3루타로 시즌 첫 안타이자 현대에서 그리고 홈구장 도원에서 첫 안타를 기록했다. 참고로 이날 전준호의 이 안타(3루타)는 결승 타점을 올리며 팀의 개막 2연전 싹쓸이를 이루는 결정적인 안타였다. 그리고 인천 홈팬들에게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경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트레이드의 충격이 컸던 것일까? 우리가 알던 전준호는 없었다. 그보다 현대 팬들이 기대하고 기다렸던 “1번 타자”, 베이스를 휘젓던 전준호는 보이지 않았다.

 

전년도 준우승팀 현대는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전준호였지만 기존 선수들에게 전염(?)됐다. 전준호는 시즌 내내 부상과 트레이드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았을까? 그는 프로 입단 후 최악의 한 시즌을 보냈다. 1997시즌 전준호는 110경기에 출장 369타수 91안타 타율 0.247 홈런 2개 18타점 도루 23개를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그가 기록한 출루율 0.339는 1993년 이후 두번째로 가장 낮은 기록이었다. 이후 2005년 0.309를 기록할 때까지는 커리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였다.

 

당시 한국 나이로 스물아홉의 전준호. 이제 서른 살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서른 살의 선수는 한창의 선수라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물론 80년대 혹은 90년대 초반과 달리 선수 수명(?)이 늘어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는 롯데 시절의 모습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고, 현대의 선택이 실패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도…

 

일각수 군단 공격의 선봉장으로 변신

 

인천으로 이적 첫해 최악의 한 해를 보낸 전준호. ‘롯데 시절’ 전준호와는 분명히 달랐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다시 말하면 롯데 시절처럼 많은 도루를 하는 전준호는 분명 사라졌다. 하지만 새로운 스타일의…현대에 맞춤형 1번 타자로 거듭난 것이다.

 

1998시즌 현대는 리그를 압도하며 나홀로 질주를 한 팀이었다. 그리고 전준호는 1년 만에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1998시즌 전준호는 126경기를 모두 뛰며 446타수 143안타 타율 0.321 도루 35개 출루율 0.398 장타율 0.422를 기록하며 이때 기준으로 타율, 안타, 출루율, 장타율은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참고로 5개의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개인 커리어 한 시즌 최다 홈런(1992년 5개)이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전준호는 7안타 3타점 도루 1개 타율 0.304를 기록하며 인천연고 역사상 첫 + 현대 유니콘스 창단 첫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참고로 커리어 두 번째 우승이었다(1992년 롯데에서 우승). 시즌 종료 후 전준호는 통산 세 번째이자(1993, 1995, 1998)이자 커리어 마지막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대미를 장식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이듬해 팀이 괴상한 KBO 룰(양대리그)로 인해 가을야구에 실패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즌을 보냈던 현대. 그러나 전준호는 자기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1999시즌 129경기에 출장(132경기 체제)하며 470타수 137안타 타율 0.291 도루 38개를 자기의 역할은 충신히 해낸 시즌이었다.

 

이제 현대는 더 이상 ‘1번 타자’를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건강만 하면 한 시즌을 책임질 수 있는 인천 연고와 팀 역사상 최고의 1번 타자. 더 나아가 KBO리그 레전드 1번 타자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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