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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왕조/왕조의 주역들

현대 마지막 승리 투수 ‘수경 언니’ 김수경 -2편(끝)-

by 특급용병 2026.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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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의 선택 그리고…

 

2000시즌 종료 후 팀의 기둥이자 에이스 정민태가 일본으로 떠났다. 물론 임선동이 있었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김수경이 팀의 중심으로 꼽히는 절대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좀 더 완벽한 투수가 되기를 원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투구폼 교정이었다.

 

사실 김수경은 킥킹을 할 때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동작은 독특하고 보는 이들에게 다이내믹한 느낌을 주지만 반동을 일으키는 만큼 무릎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력한 구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제구력에 약점이 있어서 투구 수가 많아지는 단점을 개선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는 완벽한 실패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치명상을 입는 계기가 됐다.

 

이전과 다른 어정쩡한 투구폼. 여기에 하체 훈련을 거의 하지 못하면서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2001시즌 김수경은 단 20경기에 등판해 6697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5.20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이전에 알던 김수경은 완전히 사라졌다. 성적을 떠나 이전까지 시원하게 볼을 때리던 그의 모습은 사라졌고, 투구폼도 달라지면서 특유의 리듬이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투구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즉 깔끔하고 다이내믹하던 투구폼이 사라진 대신 킥킹과 테이크백 할 때 무언가 걸리는 것과 같은 동작이 발생했다. 쉽게 표현하면 덜컹거린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150km이 나오던 구속도 10km 정도 떨어졌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이런 모습은 계속됐다.

 

『어떤 이들은 그에게 혹사를 지적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거나 야구를 안 보고 그냥 말하는 것이다. 혹사라고 할 것이 없었다. 훗날 김수경은 모든 책임을 본인에게로 돌렸다. 하지만 엄연히 말하면 김시진 코치의 지분이 상당했다. 김시진-김수경의 관계는 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당연히 김수경은 지도자 탓을 하지 않는 것. 이는 팬들의 시각에서 김성근에 의해 박살 난 투수들이 ‘혹사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물론 김시진 전감독을 까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대 팬들은 김시진 코치의 책임에 대해서 지적하는 이들도 많았던 것. 물론 결과론이지만 굳이 한 해 18승 한 투수에게 변화를 주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졌기에…김시진 코치나 김수경도 망가지려고 모험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팬의 입장에서는 너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다시 돌아온 김수경, 유니콘스 마지막 승리 투수

 

2002시즌 김수경은 27경기 등판해 1210151.1이닝과 평균자책점 4.88을 기록했다. 당연히 전년도 부진을 씻어냈지만, 기대치에 어울리는 성적은 아니었다. 반대로 마냥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 회복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3시즌 초반 그는 다시 2000시즌 김수경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번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분명 좋은 빠른 볼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 변화구나 체인지업을 고집하다가 어려운 경기 운영 혹은 경기를 망치는 일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경은 2003시즌 29경기에 등판 167이닝을 소화하며 109패 평균자책점 4.63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현대. 그리고 김수경은 가을에 빛나는 투구를 했다. 아니 당장 가을 무대보다 다음을 기대하게 했다. 한국시리즈 3차전 2실점 호투를 펼쳤고, 5차전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경기를 펼쳤다. 그리고 팀이 통산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데 매우 큰(?)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3승을 정민태가 따냈다. 따라서 누군가(?)1승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김수경이 해낸 것이다. 그러므로 김수경의 1승은 단순한 1승이 아니었다. 어쨌든 아쉬움은 있었지만, 김수경은 그렇게 다시 자신을 찾아가고 있었다.

2연패에 도전하는 현대 유니콘스. 그리고 2004년 초반 김수경은 팀의 에이스 역할을 감당했다. 특히 5월에 정민태-피어리가 무너졌을 때 김수경의 고군분투는 팀이 1위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였다. 다만 이때 김수경은 일주일에 한 번(금요일)만 등판했다. 그의 무릎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반기만 보면 전성기 투구폼으로 거의 돌아왔고, 더는 도망가는 모습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릎이 말썽이었다. 전반기 15경기에서 73패 평균자책점 3.35를 기록했던 김수경. 하지만 이후 10승에 도달하는 과정이 매우 험난했다. 특히 부상에서 돌아왔을 때는 투구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상체만으로 투구하면서 구속도 130km 중반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팀이 잘 나가고 있음에도 힘겹게 시즌을 보내던 김수경은 2004시즌 26경기에서 152.2이닝을 책임지며 118패 평균자책점 4.01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참고로 팀은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김수경은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부진했다. 그러나 6차전에서는 진통제를 맞고 던지는 투혼을 발휘하며 그날만큼은 언터처블이었다. 다만 타자들이 한 점도 뽑아내지 못하며 무승부를 기록했다. 어쨌든 9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현대는 통산 네 번째 우승이자 마지막 우승을 달성했고, 김수경에게도 현역 마지막 우승이었다.

 

시즌이 끝나고 김수경은 무릎 수술을 했다. 그리고 맞이한 2005년 사실 던져준 것이 감사할 정도였다. 김수경은 2005시즌 90.2이닝을 소화하며 775.76의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감한다. 2006시즌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17경기에서 평균자책점은 3.78을 기록했지만 47패에 그쳤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이닝을 소화했던 시즌도 아니었다.

 

2006시즌이 끝나고 김수경은 FA를 선언하며 현대와 1+2년 계약에 합의했다. 그리고 2007시즌 김수경은 최근 몇 시즌 가운데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30경기에 등판하며 176.1이닝을 소화했다. 그리고 127패 평균자책점 3.88을 기록한 것. 특히 당시 현대의 전력은 가장 좋지 않을 때였다. 김수경 개인적으로는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시즌이었다. 여기에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것은 마냥 좋게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슬프게도 김수경은 현대 유니콘스 역사의 마지막 선발 투수가 되었고, 마지막 승리 투수였기 때문이다. 모기업의 어려움 속에서 사실상 그냥 버텨온 현대. 하지만 결국에는 현대 유니콘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유니콘스의 시간이 멈추면서 순백의 유니콘스의 시간도 멈췄다.

 

끝내 좌절된 통산 124승

 

팀은 잃었지만 김수경에게는 꿈이 있었다. 자신을 있게 해준 김시진 감독과 또한 가장 좋아하는 선배 정민태 코치의 통산 승수였던 124승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아니 당연히 넘어설 것처럼 보였다. 그가 우리 히어로즈의 첫 시즌을 보낼 때의 나이가 고작 29살이었기 때문이다.

 

김수경은 2008시즌 26경기 36패 평균자책점 3.88을 기록했다. 사실 히어로즈라는 팀은 팀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진했다고 볼 수도 없었다. 이듬해 25경기 117.1이닝을 던지며 611패 그러나 평균자책점이 무려 6.67이었다. 하지만 김수경의 승리를 멈춰버리고 말았다. 20111승이 그의 프로 생활의 마지막 승리가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2008-2012년까지 히어로즈에서 5년간 고작 10승을 추가했을 뿐이다. 그렇게 그의 꿈이자 목표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수경은 2012년을 끝으로 마운드를 떠나 불펜 코치로 활동했다. 그러면서도 재기를 꿈꾸기도 했던 김수경. 그렇기에 공식적인 은퇴 선언도 없었다. 하지만 1군 복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2013년 시즌이 끝나고 고양 원더스에 선수로 입단하며 재도전을 꿈을 꿨다. 하지만 결국 프로 복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20151026일 정식으로 은퇴했다. 이후 NC 스카우트로 활동하던 김수경은 2018년부터 NC의 코치로 지도자로 활동하던 그는 2026년 키움에 투수 총괄 코치가 됐다.

 

숨겨진 아픈 손가락 순백의 유니콘

 

이제 김수경이 현대 유니폼을 입을 수는 없다. 그러나 김수경을 추억하면 필자는 아픈 손가락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흔히 말하는 아픈 손가락과는 의미가 좀 다르다. 김수경은 선배는 물론 후배들에게도 모범이 되는 선수였다. 현대에서 말년에 김수경은 이보근에게 과거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조언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을 때 마음이 아팠다.

 

2000년까지 김수경이라면 KBO 통산 200승이 아니라 그 이상도 가능했다. 200승이 아니라도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더 높이 가려다가 날개가 꺾였고, 그의 무릎은 그를 발목 잡기도 했다. 그래서 아픈 손가락이었다. 다른 것을 차치하더라도 그의 무릎만 건강하게 버텨줬다면이제는 부질없는 가정이지만그래도 그는 KBO리그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혹은 야구라는 것 자체를 기억 못할 때까지 유니콘스의 마지막 승리 투수다. 그리고 선배 정민태도 하지 못한 유니콘스의 마지막 선발 투수였다.

 

그가 어떤 지도자가 될지는 모르겠다. 어느 단계까지 올라갈지도 그러나 언젠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며, 선수 시절 못다 이룬 꿈을 지도자로 이루길 바라고 언젠가 감독으로 자신의 스승과 선배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 김수경

● 백넘버 : 30

● 1979년 8월 20일생

● 인천서화초-대헌중-인천고

● 우완투수

● 1998년 고졸우선지명 (현대)

● 소속팀 : 1998-2007 현대 -> 2008-2012 히어로즈

● 주요 경력

 - 신인왕(1998)

 - 승률왕(1998)

 - 탈삼진왕(1999)

 - 다승왕(2000)

 - 한국시리즈 우승 4회(1998, 2000, 20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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