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울 때 빛났던 ‘캡틴’
2001년 이숭용은 다시 한번 타격 폼에 변화를 주었다. 그 결과 1997년에 이은 커리어 두 번째 3할(0.300)과 129안타 10홈런 64타점을 기록했다. 타율은 비교적 아름다웠는데 도대체 홈런 숫자는 왜 늘어나지 않은 것일까? 2002시즌에는 19개의 홈런으로 커리어 최다 홈런과 타점(76)과 타율 0.284를 기록했다. 하지만 역시나 2%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늘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는 선수. 이것이 이숭용의 숙명이었을까?
그리고 2003시즌은 이숭용의 프로 18시즌 가운데 ‘커리어 하이’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세부 스탯을 보면 그렇지는 않지만…2003시즌 현대는 박재홍이 빠져 있었다. 팀을 대표하던 타자가 빠져나간 것이다. 모기업 역시 어려운 상황 속에 직면했다. 아니 사실 유니콘스는 모기업이 없어졌다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이숭용은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팀의 ‘캡틴’으로 유니콘스를 이끌었다. 그리고 133경기 모두 출장하며 0.294의 타율 150안타(커리어 하이) 18홈런 76타점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시리즈 7경기 동안 26타수 9안타 1홈런 4타점 타율 0.346으로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통산 세 번째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세이버 상으로는 1997년이 커리어 하이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체감상 2003년은 그의 최고 시즌이었다. 기록 외에도 팀 사정을 생각한다면 더욱 최고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커리어 하이라는 것도 누군가는 웃을 수 있었다. 답답할 정도로 이숭용은 그 어떤 선을 넘지 못했다.
분명 3할을 친 시즌도 있었지만, 그는 거의 커리어 중 2할 8-9푼의 벽을 쉽게 넘지 못했다. 또한 20홈런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 옛날(?) 힘 있던 젊은 시절, 타신투병 시절에도 이숭용은 타격은 늘 그 자리를 지켰다. 이는 결국 팬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3년은 심정수가 이승엽과 홈런 레이스를 펼쳤다. 그런데 현대는 3번 심정수 4번 이숭용으로 구성됐다. 상대적으로 이승엽은 뒤에 4번 마해영, 5번 양준혁이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상대는 심정수를 걸리고 4번 타자 이숭용과 대결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러자 현대 팬인지 심정수 팬인지는 모르겠지만 구단 홈페이지에 이숭용에 대한 비판을 넘어 비난이 폭주했다. 그래서 이숭용이(물론 홍보팀이 만들었겠지만…) 팬들에게 사과의 글을 올리는 일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이숭용은 팀을 지켰고, 심정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그와 별개로 이게 사과할 문제였는지…』
의리의 사나이, 현대 왕조의 영원한 캡틴이 되다
2003년 시즌이 끝나고 이숭용은 FA를 선언했다. 당시 현대는 이숭용 외에도 박종호가 FA를 선언했었다. 과거의 현대라면 문제가 없었지만 사실 이름만 현대였을 뿐, 모기업의 방치 즉, 하이닉스는 현대 지분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현대가 2명을 잡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이숭용 역시 서울 팀과 지방 팀에 오퍼를 받은 상황.
이런 흐름 속에 현대는 계약기간 3년, 이숭용은 4년으로 팽팽하게 맞섰다. 계약 조건도 현대와 타구단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서울 팀의 경우 4년 총액 25억까지 배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기에 박종호도 삼성으로 떠났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숭용은 떠나지 않았다. 이숭용은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음에도 3년 17억 5천에 현대에 남게 됐다.

FA 먹튀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이숭용은 달랐다. 그는 부도 수표가 아닌 흥행 수표였다. 계약 첫 시즌이었던 2004시즌에도 전경기 출장하며 137안타 9홈런 85타점 타율 0.293으로 몸값 대비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004한국시리즈는 9차전까지는 사상 초유의 혈투 속에서 현대는 통산 네 번째 우승이자 해태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여전히 이숭용이 있었다.
하지만 우승의 여운을 즐길 기회도 없이 FA로 심정수와 더 충격적인 사실은 박진만도 팀을 떠났다. 게다가 MVP급 활약을 했던 외국인 선수 브룸바는 일본으로 떠났다. 분명 우승했지만 현대에게는 영광보다 상처만 남았다. 이때 이숭용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이숭용은 2005시즌 초반 ‘배리 본즈’가 부럽지 않은 활약을 했다. 프로 입단 후 가장 좋은 홈런 페이스는 물론 데뷔 후 첫 20홈런 달성도 확실해 보였다. 아니 30홈런도…왜냐하면 6월까지 무려 14개의 홈런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부상이 모든 꿈(?)을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2005시즌 이숭용은 105경기를 뛰었다. 그러나 83안타 14홈런 55타점 타율은 0.252에 그쳤다. 현대 유니폼을 입고 가장 좋지 않은 시즌이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숭용의 14개 홈런은 6월까지 나온 것이란 사실이다. 7월부터 단 한 개의 홈런도 치지 못했다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아쉬웠던 시즌이었다. 부상 없이 페이스가 계속 이어졌다면 진짜 역대급 시즌을 보낼 수도 있었다. 적어도 서튼과 함께 쌍포를 가동하며 어려웠던 현대는 4강으로 견인했을지도…아무튼…』
다시 오뚝이 아니 귀신같이 이숭용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2006시즌 119경기를 뛰며 106안타 홈런 7개 43타점 타율 0.286을 기록하며 약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팀을 정규시즌 2위로 이끌었다. 다만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막혀 가을 야구를 끝냈던 것은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2007시즌 95경기를 뛰며 규정 타석에는 미달 됐지만 90안타 2홈런 34타점 타율 0.301로 커리어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 3할을 기록하게 됐다.
그런데 2007년은 팀 혹은 개인성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현대 유니콘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시즌이었다. 그야말로 눈물의 시즌이었던 것. 현대가 시작되면서 이숭용의 야구 인생도 만개했다. 그런 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고, 캡틴으로써 이숭용은 마지막까지 그리고 끝까지 팀을 지켰다.
영웅 승선 그리고 은퇴
사전 발설(?)로 인해 현대 인수는 여러 차례 엎질러졌다. 그리고 팀이 해체로 끝날 위기에 처했을 때, 이숭용은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히어로즈.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팀은 안팎으로 시끄럽고 어수선했다. 그러나 이숭용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며 후배들을 다독여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우리 히어로즈의 초대 감독 이광환 감독은 SK 김성근 감독과 합의해 이숭용을 정상호와 1:1 맞트레이드를 합의했다. 다만 히어로즈 측에서 현금 1억을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여러 풍파를 겪으면서도 2008시즌 이숭용은 우리 히어로즈에서 109경기를 뛰었다. 그리고 90안타 3홈런 27타점 타율 0.270을 기록했다. 이숭용의 행보를 보면 크게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결코 정상적인 시즌을 보낸 것도 아니었다. 입단 첫해와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면 가장 좋지 않던 시즌이었다.
하지만 2009년 현대에서 함께 했던 김시진 코치가 2대 감독으로 돌아오면서 이숭용은 마지막 힘을 내게 됐다. 물론 팀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2009시즌 114경기를 뛰면서 107안타 4홈런 52타점 타율 0.296으로 3년 만에 100안타를 돌파했다. 2010시즌에도 90안타 2홈런 30타점 타율 0.274를 기록했다. 크게 나쁘지 않지만 과거에 비해 장타력이 급감한다는 것. 특히 히어로즈는 목동 구장을 쓰고 있었다.
적어도 현대 시절에는 15-18홈런을 치던 타자였는데 힘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2011시즌 이숭용은 2000경기 출장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이숭용은 2000경기 출장을 달성하고 2001번째 경기를 은퇴식으로 갖게 됐다. 그리고 ‘캡틴 이숭용’의 리더십이 멈추게 됐다.
영원한 캡틴 이제는 감독으로…
단 한 번만이라도 ‘몬스터 시즌’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 몬스터 시즌은 없었다. 그것은 늘 불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숭용의 장점이자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변함없이(?) 늘 꾸준했다는 사실이다. 잘나갈 때는 ‘올해는 터지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최종 성적은 제 자리로…반대로 극심한 부진에 팬들은 분노했지만 결국에는 제 자리로 돌아왔던…하지만 이숭용인 이런 그의 커리어처럼 팀의 처음과 끝을 묵묵히 지키면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했다.
강해 보이지 않지만 강력했던 이숭용. 그래서 그를 ‘캡틴’이라고 부른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현대 유니콘스. 그래서 안타깝지만,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현대 유니콘스는 아니지만, 이숭용은 이제 감독으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있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선수로 현역 시절을 보냈던 것처럼 감독으로서도 롱런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기를 응원한다. 그리고 감독으로서는 꼭 몬스터 시즌(?)을 경험하기를 기대한다.
● 이숭용
● 백넘버 : 10
● 1971년 3월 10일생
● 서울용암초-중앙중-중앙고-경희대
● 좌투/좌타/1루수-외야수
● 1994년 2차 1라운드(전체 1번) 태평양 지명
● 소속팀 : 1994-1995 태평양 -> 1996-2007 현대 -> 2008-2011 히어로즈
● 주요 경력
- 2000경기 출전(KBO리그 6번째)
- 한국시리즈 우승 4회(1998, 2000, 20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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